요즘 KBS 창립 50주년 기념 사극 '고려거란전쟁'이 인기를 얻어가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는 역사이겠지만, 귀주대첩을 이끈 강감찬 장군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회를 거듭할수록 인기몰이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이고 배우도 사극 하면 떠오르는 훈남인 최수종이 맡겨 되었습니다. 저 또한 최수종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사극을 원래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더욱 관심이 갖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보시면서 역사 배경을 알고 보면 더욱 몰입감과 집중해서 볼 수 있을 것 같아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거란의 1, 2차 침략

고려 성종 12년인 993년,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요나라)의 80만 대군이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이에 성종은 시중 박양유를 상군사로, 서희를 중군사, 최량을 하군사로 삼아 이에 대비하게 했습니다. 봉산전투에서 고려군이 패배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안융진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장은 고착화되었고, 이에 서희는 거란 진영에 찾아가 소손녕과 담판을 짓고 강동 6주를 받아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거란은 뒤늦게 이 지역의 군사적 중요성을 깨닫고 다시 반환을 요구했지만 고려는 거절하면서 그렇게 오랜 기간 거란의 침공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침공해 오던 거란이 고려에 세게 한 대 맞고 더 이상 고려를 넘보지 못하는 전투가 있었으니 이번 글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전투는 살수대첩, 한산도 대첩과 더불어 한국사 3대 대첩 중 하나인 귀주대첩입니다. 강동 6주를 돌려달라는 요구에도 고려가 응하지 않자, 거란은 고려를 제대로 침공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1014년 6월, 10월에 고려를 침공해 왔지만 결국 피해만 입고 퇴각하게 되죠. 이후에도 계속 사신을 보내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거듭된 전투 승리로 자신감이 오른 고려는 이들의 요구를 거부합니다. 이에 격분한 요나라는 1015년 9월, 다시 고려의 통주를 공격했지만 또다시 실패했고, 1017년 5월에도 고려의 흥화진을 침공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큰 피해만 입고 후퇴하게 됩니다. 1018년 10월에도 몇 차례의 고려 공격에 실패하자, 극대노한 요 성종은 전면적인 고려 침공을 준비하게 됩니다. 

거란의 3차 침략

1018년 12월에 거란의 소배압을 총사령관인 도통으로 삼고 황제 직속 부대인 우피실군을 포함한 10만에 달하는 정예 기병을 끌고 내려오면서 거란의 3차 침공이 시작됩니다. 그러자 고려 역시 이에 맞서 서북면 행영도통사 강감찬을 총지휘관인 상원수로, 대장군 강민첨을 부원수로 임명하여 20만 8천3백 명의 군사를 준비했습니다. 이때 강감찬의 나이는 72세의 고령이었죠. 강감찬은 거란군이 기병 위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여러 성들을 우회해 수도 개경 함락을 최우선으로 정하고 진격할 것으로 판단하고 성내에서 기병 1만 2천 명을 빼내 산중에 매복하게 하고 소가죽을 엮어 흥화진 동쪽에 있는 삼교천을 틀어막습니다. 거란의 군사들이 흥화진에 도착하자 강감찬의 예상대로 고려의 방어를 우회해 삼교천을 지나갑니다. 그러자 고려군은 소가죽으로 막아놓았던 둑을 터트리고 거란군은 순식간에 불어난 물에 대열이 흐트러지면서 혼란해진 거란의 병사들을 향해 빼놓았던 1만 2천 명의 기병으로 돌격해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삼교천 전투'입니다.

이때는 거란군에 결정적 타격을 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거란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소배압은 이 전투에서 피해를 입긴 했지만, 기세를 잃지 않고 개경을 향해 계속 진격합니다. 바로 현종의 항복을 받아내면 전쟁에서 이긴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강감찬은 이곳저곳에 별동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매복을 심어 놓아 계속해서 거란군의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치고 빠지는 전술을 쓰고, 부원수 강민첨을 보내 자주의 내구산에서 거란군을 또다시 격파하며 거란군의 진로를 평양 근처인 마탄으로 향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리고 조원은 마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마탄에서 거란군을 맞이하는데 이때도 1만 가까이 되는 거란군을 무찌르게 됩니다. 이런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배압의 본진은 선봉대의 진로와는 달리 산길을 돌아 개경으로 남하합니다. 이어지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거란군이 개경으로 계속 진군해 오자, 강감찬은 김종현에게 병사 1만을 주어 밤낮으로 달려 거란군을 견제하면서 개경을 보호하게 합니다. 그렇게 김종현이 이끄는 1만의 병력은 소배압의 군대를 끊임없이 위협하지만 수도 개경의 함락만을 바라보던 소배압은 고려의 수많은 방해를 뚫고 천신만고 끝에 신은현까지 도착하게 됩니다.  이때 이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소배압의 군대가 개경을 향해 다가오자 송악산의 산신이 소나무들로 모습을 바꾸어 거란군이 지나갈 때 일제히 사람소리를 내자, 거란군은 두려움에 떨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경은 전투를 할 수 있는 성이 아니었는데요. 또한 병력은 있는 대로 긁어모아 올려 보냈던 상태라 개경을 방어할 병력도 없었죠. 하지만 현종은 두 번 도망은 없다고 외치며 들판의 곡식 등을 제거하고 우물은 메워버리는 청야작전을 펴면서 성밖의 백성들을 전부 성안으로 들어오게 해 결사항전을 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나갑니다. 왕의 이런 모습에 고려 군사들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감격해 사기가 하늘을 찔렀고, 거란군 입장에서는 뒤에서 고려군이 바짝 추격해 오는 상황에서 개경에서는 사기가 충만한 채 결사항전을 준비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소배압은 한 가지 책략을 생각해 내는데, 어쩔 수 없이 퇴각하는 척하고 슬쩍 물러났다가 개경의 방비가 소홀해졌을 때 척후병을 보내 성문을 열어 쳐들어 갈 작전이었던 것입니다. 그 후 고려 개경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글이 길어져서 다음 편에서 확인해 주세요. 아래에 링크 걸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려거란전쟁'을 보며 2부

1부를 확인하시려면 아래를 클릭해 주세요. '고려거란전쟁'을 보며 1부 요즘 KBS 창립 50주년 기념 사극 '고려거란전쟁'이 인기를 얻어가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는 역사이겠지만, 귀주대첩을 이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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